break #1

일요일의 초단편 프로젝트는 여름의 끝까지 쉽니다. 오버/듀 마스터는 긴 호흡이 필요한 몇 가지 다른 작업에 몰두하다 돌아옵니다. 이것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닫지 않습니다. 백 편을 쓰기로 했으니까 백 편을 쓸 때까지는 끝이 아닙니다. 지난해 구월에 이 모든 일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구월이 오면 시즌 2라는 기분으로 재개합니다.

일요일마다 (또는 다른 요일에 마치 그날이 일요일인 척) 올리던 초단편과 초단편 열 편마다 끼워 넣던 반성문은 잠시 중단하지만, 그 틈을 타서 다른 무언가를 꺼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초단편의 번호와 공지의 번호와 성찰문의 번호 체계 바깥의 다른 무언가 말입니다. (예: 자전거 글 번호)

그게 무어든 성실한 마음을 부어 만듭니다.

Stay tuned. Stick around.

notice #37

오버/듀 마스터 나오세요. 어디 있습니까. 뭘 하고 있습니까.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준 분이 있다면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 건 가끔 귀띔을 해주셔도 됩니다. 간절한 말이 닿아야 할 곳에 제대로 닿지 않는 것을 여러 곳에서 목격하고 어쩔 줄 모르며 지내고 있습니다.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말로 다지기보다 곧장 실천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몇 주를 건너 다시 수요일에 찾아와버린 일요일의 초단편입니다.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주는 파비안의 의미와 파비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양파의 완성”으로 이해합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따옴표 안의 하이퍼링크를 누르세요!

notice #36

일요일의 초단편이 일요일 밤에 찾아왔습니다. “결국은 용기”를 내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가해와 피해라는 단어의 속과 뒤와 아래를 흐르는 다양한 두려움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해보고 싶었습니다.

학부에서 공동체 내의 성폭력을 자치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졸업 이후 단체 안팎에서 동성 간 성폭력을 지원한 경험으로부터 줄곧 가져온 고민의 일부를 꺼내어 썼습니다. 같은 시기 같은 고민을 나눴던 친구에게 검토를 받은 초안의 수정본입니다. 미흡한 부분은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몇 주간 목요일에 도착하다 결국 한 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초단편이라는 말도 도무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공모전 단편 소설 모집 요강이 제시하는 출품작 하한 분량마저 넘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분량이나 형식은 이야기가 나아갈 바에 따라 결정되는 법이라고 (그렇게 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이런 분량과 이런 형식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는지는 다시 검토해보려고 합니다.